꿈의 저편, 떠오르는 심연
Beyond the Dream, the Rising Abyss


김가은




무한은 우리들의 내부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삶이 억제하고 조심성이 멈추게 하나 고독 가운데서는 다시 계속되는 일종의 존재의 팽창에 결부되어 있다. [...] 우리는 무한한 세계 속에서 꿈꾼다. 무한은 움직임 없는 인간의 움직임이다. 무한은 조용한 몽상의 역동적인 성격의 하나이다.

- 가스통 바슐라르, 『공간의 시학』 1)



  심정은의 작품 속 이미지들은 현실 세계의 물리적 법칙에서 유리된 채 자유롭게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목재를 사용하여 부조로 제작된 이 작품들은 나무 특유의 질감이 주는 편안한 감각을 일깨우면서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일견 평온한 동화 속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 장면에는 어딘가 낯선 요소들이 공존하는데, 이를 통해 작품은 존재의 내면을 성찰하게 하는 새로운 지평으로 확장된다. 그것은 누군가의 내면에 막연하게 존재할 이상향이기도 하고, 꿈속에서 경험한 비현실적인 풍경이기도 하며, 때로는 단절되어 고립된 자기만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인간이 지닌 근본적인 불안감을 희망과 행복한 꿈꾸기라는 명제로 치환시키고 있다”는 작가의 설명은 불안을 실존의 핵심으로 본 실존주의자들의 사유를 상기시킨다. 이 불안은 특정 상황이나 대상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심리적 반응이라기보다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이다. 심정은은 이러한 불안을 통해 존재의 심연을 받아들이면서도 이를 다시 상상력이 이끄는 꿈의 공간으로 인도한다. 여기서 꿈은 불안을 회피하기 위한 기제가 아니라, 오히려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가 『공간의 시학』에서 몽상(rêverie)의 개념을 통해서 설명했던 인간 존재의 본질적이고 창조적인 경험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 있다. 존재의 심연에 한 걸음씩 다가가려는 듯, 작가는 오랜 시간을 들여 세밀하게 나무를 조각하는데, 반복되는 이 섬세한 행위를 통해 작가 내면의 몽상적 심상들이 함께 새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과정을 통해 형상화된 <어린 양>(2024)이나 <천사 2>(2022) 등에 등장하는 자연물이나 천사와 같은 개별 이미지들은 단순한 기호나 상징으로써 특정한 의미로 수렴되기보다는 존재론적이고 보편적인 차원에서 발현되며, 보는 이들 각자가 가진 내면의 경험들과 맞물리면서 자기를 발견하기 위한 새로운 성찰을 유도한다.
  <두 개의 집>(2025)과 <집>(2025)에서 볼 수 있듯이, 심정은의 작품에서 집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다양하게 변주된다. 다양한 패턴과 색깔의 집들은 공중에 떠 있고, 외벽에는 내부를 엿볼 수 있는 살짝 벌어진 틈새가 있으며, 틈새 사이로 보이는 집의 내부 역시 외벽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패턴과 색깔로 표현되어 있다. 바슐라르는 집을 주거를 위한 기능적 건축물로 보지 않고 인간의 내면적 경험의 원형적 장소이자 상상력의 원천으로 보았다. 어릴 적 누구나 구석진 방에 자기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을 만들거나 불이 꺼진 화장실에서 막연한 무서움을 느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바슐라르에게 집은 이러한 개인의 경험을 통해 기억을 축적시키고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함으로써 개인의 내면 세계를 형성하는 기반인 것이다. 심정은의 작품에 등장하는 집의 형상은 외부와 내부, 안정과 불안정, 의식과 무의식, 주체와 타자, 현실과 꿈의 경계가 서로 교차하는 지점에서 특유의 긴장감을 자아낸다. 여기에서 집은 그 자체로 불확실하고 복합적인 내면 존재에 대한 철학적 물음과 근원적 탐구에 대한 갈망을 드러내는 형상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겹겹이 포개진 산맥 사이에 열쇠 모양 구멍이 나 있는 작은 집이 배치된 <천공의 섬(집)>(2025)이나, 두 마리 양이 등장하는 <천공의 섬(두 양)>(2025)을 통해서 작가는 섬이라는 고립된 영역을 형상화한다. 여기에서 섬은 중력 법칙도 시간 법칙도 적용되지 않는다는 듯이 외부 세계와 단절된 원초적이고 순수한 상태의 신비로운 공간으로 그려진다. 세속에서 벗어나 소외됨으로써 존재와 고독을 사유하고 내면을 발견하는 장치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전시 《꿈・섬・집》은 작가가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보여준다. 현실의 무게에서 잠시 벗어나 우리 내면을 발견하고 각자의 존재를 사유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심정은이 펼쳐 놓은 이미지들은 따뜻하지만 고독하고, 평온하지만 아슬아슬하며, 불안하지만 자유롭다. 무의식 저편에 숨겨진 자신만의 꿈, 섬, 집의 조각들을 불러내어 저마다의 내면의 심연과 조우하기를 기대한다.


1) 가스통 바슐라르, 『공간의 시학』(1957), 곽광수 옮김, 동문선, 2003, p.319






  • * 2025년 4월 2일 작성.
  • ** 이 글은 2025년 4월 16일부터 4월 29일까지 공간지은에서 개최된 심정은 개인전 《꿈・섬・집》전의 서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