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ner bloom: 내밀한 곳에서 피어나는 사랑느낌 그 자체







김가은


너의 깊숙한 곳에서 너울거리는 꿈을
그 어둠에서 모두 풀어 주라.
꿈은 분수와 같아서 더 밝게
수반의 품으로 다시 떨어진다.
노래같이 음정을 잡으며.

그렇다. 어린아이같이 되는 것이다.
모든 불안은 바로 시작이지만
대지는 끝이 없다.
무서움은 몸짓이고
동경은 대지의 마음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너의 깊숙한 곳에서 너울거리는 꿈을>, 송영택 옮김


  변경수는 2007년부터 인체 형상을 통해 인간 존재와 불안을 주제로 작업해 왔다. 여기서 말하는 불안은 어떤 원인으로부터 기인하는 특정 사건이나 상황에 대한 불안이기 보다는 인간 내면 안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불안이다. 이러한 불안에 대한 주제는 그의 초기작업 안에 응축되어 있었던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에서부터 기인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변경수의 작업에서는 인간의 형상조각이 선택되어 왔다. 어떤 느낌 그 자체가 사람의 형상을 통해서 떠오른다고 말하는 작가의 설명은, 그 동안 지속적으로 인간의 원형(原型)에 천착해온 그의 작업 세계를 구체화시킨다.
  이번 전시 《inner bloom》은 기존의 이러한 불안에 천착한 작가의 작업세계를 계승하면서도 그것의 표현에 있어서 보다 감각적이고 세밀한 방식을 통해서 주제에 새롭게 접근한다. 2022년 《inner mass》전을 통해 작가가 스컬피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불안과 사랑이라는 주제를 소조형식을 통해 빚어내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자신이 포착한 사랑의 느낌을 크리스탈 레진을 이용한 부조 형식의 작품들을 통해 형상화하였다. 
  작가는 자신의 초기작업에서 현대사회에서 감지되는 고독감과 소외감을 작업으로 드러내었다. 개개인의 표정은 사라진 채 수많은 군중 안에 위치하는 존재로서 인간을 바라보면서 내면의 불안과 고독은 심화된다. 작업을 이어가면서 그는 이러한 부정적인 느낌에 대한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살피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그 안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불안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극복하여 따뜻하고 충만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작가는 내면 속 반대편에서 사랑을 발견한다. 자신의 박사논문에서 변경수는 “사랑의 발견을 통해 불안이 죄와 관계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밝혔는데, 이는 성경적인 관점으로 사랑에 접근한 것이다. 사랑은 작가에게 인간이 가진 본질적인 불안을 극복하는 대안이었다.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의 내면 안에 뒤엉킨 채 존재하는 양가적인 실체, 즉 불안과 사랑의 덩어리들을 병치시켜 왔던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변경수는 이와 같은 사랑의 느낌을 형상화하고 자신의 불안을 불식시키는 매개체로서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을 작품에 투영하였다. 이는 그가 사랑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릴 때 그것이 가족의 형상을 띠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의 모습을 통해 형상화된 사랑에 대한 작품 <소녀2>와 <아이>에서 볼 수 있듯이, 이번 작품들은 기존에 작가가 탐구해 온 보편적인 인간 형상에서 나아가 비교적 구체적인 묘사가 가미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또한  <소녀1>이나 <달리는 소녀>를 비롯한 다수의 작품들에서 파스텔 톤 색들이 조화롭게 부드러운 그라데이션을 형성하면서 동화 속의 한 장면처럼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부모는 자기 자녀가 걷거나 무언가에 집중하는 아주 별것 아닌 움직임을 보여줄 때도 생명과 인간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마음 한 가득 차오르는 행복감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들로 하여금 보다 넓은 스펙트럼으로 세계를 인식하도록 하고 더욱 나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변경수의 작품들에서 보이는 미소를 띠거나 아장아장 걷는 자녀의 모습들은 작가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순간에 체화되는 사랑느낌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다. 입체의 원형이 아닌 구체적인 대상을 묘사함으로써 그것이 작가의 일상 속에서 순간 포착된 하나의 이미지 그 자체라는 점이 강조되는 것이다. 손으로 1cm 남짓의 크기의 작은 인체 형상을 만들기 위해 스컬피를 조물거리며 알맞은 형태로 빚어내어 갔던 《내 작은 사랑》(2021)전이나 《inner mass》(2022)전에서 보여준 작업방식과는 다르게, 종이 위에 사랑에 대한 느낌 그 자체를 스케치한 형상을 그대로 단단한 재료에 옮겨 표현한 듯한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보다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변경수의 조형 언어들은 앞서 인용한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의 시구들을 떠올리게 한다. 불안과 고독은 릴케 시의 근원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는 하이데거를 비롯한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주면서 근원적 존재에 대해서 사유한 시인이었다. 변경수의 작업 역시 불안을 통해 근원적 존재를 확인하고 있으며, 사랑을 형상화하는 작업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태도가 잘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릴케의 시와 주제적으로 맞닿아 있다. 변경수의 작업이 실존보다는 본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릴케의 태도와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테지만 특히 릴케의 초기 작업에서 나타나는 섬세하고 서정적인 시구들은 변경수가 추구하는 조형 언어의 목소리들과 분명하게 공명하는 부분이 있다. 
  장미가 만개한 가정의 달 5월의 따사로운 시간들이 느릿하게 흘러가는 동안 고즈넉한 풍납동의 작은 갤러리 공간에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사랑을 다룬다. 자신의 가족을 작품에 투영하여 사랑을 형상화함으로써 작가의 내밀한 곳에서 피어나는 사랑느낌 그 자체를 전시에서 조금이나마 경험해볼 수 있을 것이다.



  • * 2023년 5월 16일 작성.
  • ** 이 글은 2023년 5월 23일부터 6월 5일까지 공간지은과 김가은미술사무소의 공동 주관/주최로기획되어 공간지은에서 개최된 변경수 개인전 《inner bloom》전의 서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