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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In Spite of Everyting, We
김가은
시작
2024년의 풍납 아트프로젝트를 위해 2023년 10월 13일 참여 작가와의 첫 회의가 있었다. 2022년부터 기획한 풍납아트프로젝트 《매핑풍납2022》와 《본딩풍납2023》의 내용을 소개하고, 풍납동을 모르던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지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이날 회의에서는, 주민들의 불만이 깊어지고 공터는 늘어가지만 여유롭고 정감 있는 풍납동에서 이듬해 어느 좋은 날 유쾌하고 재미난 것들을 해보자는 느슨한 계획만 세워 두었다. 회의가 끝난 후 하늘이 높고 잔디가 넓게 펼쳐진 풍납토성 산책로를 함께 걸어가면서, 각자 이 곳에서 어떤 작업을 하면 좋을지 머릿속에 끝없이 펼쳐보았을 것이다.
바람이 들어온다는 뜻을 가진 풍납(風納)이라는 지명과 땅 속에 한성백제 시기 축조된 성벽과 유물들이 매장되어 있는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해서일까. 신재은, 신하정, 정직성, 세 작가들은 바람을 활용하여 하늘에 띄우는 연이나 벌룬 작업, 그리고 땅 아래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업을 이야기했다. 풍납동은 “조용하여 살기 좋지만 개발되지 못하는 동네” 혹은 “과거의 문화재 발굴조사를 진행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아파트 재개발 논의를 하고 있는 지역”과 같은 설명이 먼저 떠오를 정도로 대립하는 것들이 많은 지역이기에, 하늘과 땅이라는 대조적인 개념이 함께 논의되는 지점이 흥미로웠다. 여러 층위로 단절되어 대조를 이루고 있는 지역 곳곳을 예술을 통해 연결해보자는 것이 기획의 방향이 되었다. 프로젝트의 제목에 있는 영단어 커넥터(connectors)는 연결 장치라는 뜻 외에도 문장과 문장을 연결하는 접속어의 의미가 있다. 그 중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nevertheless, in spite of)와 같이 대조(contrast)적인 의미가 있는 측면에 주목하였다. 이번 프로젝트는 “집들이 철거되고 동네가 침체되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떠한 활동을 지속하여 일상을 회복시키고 일반 주민들과 함께 예술의 가치를 나눌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세 번째 풍납동에서의 예술 활동이 시작되었다.
땅
2024년 9월 26일 서울 토성초등학교 1학년 전체 학생들과 발굴을 체험하는 워크샵을 진행했다. <대조연결자-발굴>(2024)은 사전에 예술가들이 손으로 제작한 테라코타 기물을 학교 운동장 내 모래놀이장에 묻어 놓고, 아이들과 함께 발굴해보는 활동이다. 기물은 유물을 연상시키는 깨진 그릇이나 수막새의 모양을 하고 있기도 하고,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추상적인 형태도 있으며, 현대의 사물이 미래에 유물이 될 것이라는 가정으로 스타벅스 로고나 인기 만화캐릭터 등으로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아이들은 각자 발굴한 기물을 여러 측면에서 상상해보고 사전에 유물이나 유구의 발굴현장이 연상되는 큰 종이 지도 위에 그것의 형태, 이름, 용도, 발굴날짜 등의 정보를 자유롭게 그리거나 써보았다. 이 발굴 활동은 아이들이 자신들이 살아가는 풍납동이라는 지역이 지닌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고 지역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70여명의 아이들이 각자 집으로 가져간 출토된 기물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과거의 것이 현재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그리고 유산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등을 생각하는 매개물로 작용한다. 아이들이 공동으로 제작한 발굴지도는 전시장에 설치되는데, 이것은 그 자체로 발굴이라는 행위를 일상의 활동 안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는 시각을 제안하는 동시에 보는 사람들에게 이곳에서 살아갈 아이들의 존재를 상기시킴으로써 미래를 위한 논의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제안한다.
하늘
2024년 10월 3일 개천절, 하늘이 열린 날, 주황색 대형 벌룬이 풍납동 하늘에 올라갔다. 한 변의 길이가 4.5m인 삼각형 네 개로 이루어진 정사면체 형태에 검은색 선으로 불규칙적인 패턴을 하고 있는 <대조연결자-벌룬>(2024)이다. 이 작품은 ㈜삼표산업 풍납공장 일부 반환부지로 서성벽 발굴현장 건너편에 위치한 풍납동 305-14번지 공터에 설치되었다. 이곳은 2021년 12월 8일부터 5일간 진행된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의 시굴조사에서 서성벽 흔적이 확인된 곳으로, 연구소는 축조기법 역시 서성벽과 일치한다고 발표하였다. 성벽을 축조할 때 서로 다른 석재를 연결시키기 위해서 역삼각형(v자) 모양으로 돌을 쌓아올렸다는 연구를 재해석하여, 벌룬의 형태와 외부 패턴 디자인이 진행되었다. 설치 당일에는 세 작가가 직접 벌룬을 하늘에 띄우는 퍼포먼스를 진행했으며, 이후 벌룬은 공중에 떠 있다가 10월 17일 예술가들에 의해 다시 땅으로 내려와 전시장 윈도우 공간에 자리 잡았다. 이 작품은 공터로 방치되어 침체된 거리를 밝고 유쾌한 작품을 통해 재조명한다는 의의를 지닌다. 그와 동시에 이것은 과거, 그리고 그 과거로 인한 갈등과 연관된 매개체를 하늘로 띄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그것을 예술가들이 땅으로 내려 전시장에 설치함으로써 이를 예술적 맥락으로 새롭게 보여주고자 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조연결자-연>(2024) 역시 하늘과 관련된 작업으로, 풍납토성 산책로에서는 작가가 직접 그린 주황색 연을 날리는 행사를 진행했다. 땅 위를 달리며 실로 매달린 연을 날리는 행위는 땅과 하늘을 직접 연결하는 상징적인 제스쳐인 것이다.
연결자
2024 풍납 애뉴얼 아트 프로젝트 《대조연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는 참여예술인의 공동작품의 제작과정과 그 결과물을 영상, 설치, 평면작업 등의 형식으로 소개한다. 이 프로젝트는 외부 지역의 세 명의 작가가 협업으로 참여한 것이었기 때문에, 더운 여름날 몇 시간씩 동네를 답사하며 공간을 탐색하고, 지역이 가진 특수성을 공유하며, 작품이 가지는 의미와 상징을 서로 간에 치열하게 논의하여 준비하는 과정을 거쳤다. 발굴 활동을 통해 풍납동 지역을 살아가는 아이들과 함께 땅 아래의 이야기를 만들어 그것을 기록하였고, 벌룬과 연을 하늘에 띄움으로써 무엇이든 품어줄 것 같은 넓은 가을 하늘의 모습을 눈에 담고, 현장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큰 관심도 느낄 수 있었다. 땅 아래에서 시작하여 하늘 높이 오른 뒤, 다시 땅으로 내려와 전시장으로 연결되는 이 일련의 과정에서 과거와 현재, 땅과 하늘, 주민과 그들의 이야기, 갈등과 예술 사이를 매개하는 예술가는, 곧 연결자가 된다.
* 2024년 10월 17일 작성.
** 이 글은 2024년 10월 18일부터 10월 31일까지 공간지은에서 개최된 2024 풍납 애뉴얼 아트프로젝트 《대조연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전의 서문이다. ( 프로젝트 바로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