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터의 발견
풍납동에 다시 이사를 오게 되었다. 학창시절을 이곳에서 보낸 후 13년 만의 일인 듯하다. 사실 동네가 크게 달라졌다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거리들이 정비된 느낌은 있었지만 내가 사는 곳 주변을 지나가면 항상 보던 동네 미용실도 그대로고, 상가들도 대부분 그대로인 듯했다. 어려서는 동네에 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집과 학교, 학원과 독서실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던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 동네에 의미 있는 곳이라고는 편의점에서 산 음료수를 들고 친구들과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던 놀이터나 하굣길에 들리던 마늘떡볶이로 유명한 분식집 정도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이사를 와서 졸업과 동시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으니, 종종 방학 때 귀국하여 방문하기는 했지만 따지고 보면 내가 풍납동에서 보낸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마을에 바람드리성이 있어 “풍납리(風納里)”로 불리게 되었다는 지명의 유래를 알게 되고, 동네를 제대로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은 이사를 오고 한참 뒤에 코로나로 인해 아이와 함께 동네에서 보낼 시간이 많아지면서부터이다. 그 시기 나는 한창 박사논문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멀리 외출할 일이 많지 않았고, 애초에 집순이인 나는 목적 없이 나가서 주변을 돌아다니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랬던 나조차도 코로나로 인해 가정보육이 장기화되니 집에만 있는 날들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집을 나오면 바로 주변에 녹지와 산책로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그때 알았다. 유모차를 끌고 동네를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를 시작으로 토성 산책로도 거닐고 작은 공원들을 찾아다녔다. 산책을 하면서 다세대 주택이나 빌라들이 있는 골목에 들어서자 처음 보는 공터들이 있었다. 원래 주택지였던 것으로 보이는 자리는 펜스로 막혀 있었고, 공터 앞의 안내판에는 땅 밑을 촬영한 사진과 함께 이러한 문구가 있었다.
서울 풍납동 토성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1호
사적지 보상 후 복원정비 전까지 지하 백제문화층을 보호・관리중입니다.
건물철거시 입회 조사 결과 지표하 1.9m에서 백제문화층이 확인되었습니다.
몇 집을 지나치자 잔디 위에 꽃나무들이 심어진 작은 터가 나왔고, 이곳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소공원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1호
「서울 풍납동 토성」으로 추가 지정된 보상완료 부지를 지하 백제 문화층 보존과 쾌적한 주거환경을 위해 임시 조성하였습니다.
안내판에 새겨진 문장들을 반복해서 읽어보고 나서야 대략적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원래 주택이었던 토지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관이 매입하는 형태로 주민에게 보상이 된 후 그 터를 보호하고 있거나 공원으로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천호역 방향의 풍납1동 쪽으로 갈수록 이러한 공터의 수가 많았다. 어떤 곳은 주차장이 되었고, 어떤 곳은 빨래를 널어두거나 화분을 놓아둔 채 방치되고 있었다. 이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풍납토성이 문화재라는 것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 토성벽을 따라 만들어진 길로 매일 등하교를 했는데, 주의 깊게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곳곳에 문화재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2018년도 말 풍납동으로 다시 이사를 오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동네를 파악하기 위해 들렀던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송파구에서 발표한 『서울 풍납동 토성 종합정비계획』(2018)이 공유되었다. 그 계획서를 자세히 읽어보았기 때문에 풍납동의 문화재 이슈에 대한 대략적인 상황을 인지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공터들을 직접 목격한 것과는 다른 감각이었다. 대학원 시절 공공미술 수업에서 읽었던 글과 수업과제로 썼던 사회참여적인 미술 프로젝트들이 떠오르면서 이 공터를 방치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누구라도 의미 있는 예술활동을 추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러한 생각이 곧바로 실천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021년 여름, 졸업을 하고 나서도 풍납동 주제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직 아무도 시작하지 않는다면 내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풍납동 예술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이렇게 풍납동에서 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배경과 지금까지의 과정을 전달하고자 한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 자신이 경험하고 파악한 풍납동 이슈의 쟁점, 갈등 속 각자의 입장들을 설명하고, 《매핑풍납2022》와 《본딩풍납2023》 프로젝트를 소개할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를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풍납동 이슈에 대한 공론화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어떠한 한 쪽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는 각각의 입장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어떤 방식으로든 예술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논의와 활동들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2. 입장의 차이
송파구 풍납동은 1963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1호로 지정된 ‘서울 풍납동 토성’(이하 ‘풍납토성’)이 소재한 곳이다.[1] 문화재로 지정될 당시에는 성벽만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그 외 지역은 일반주거지역으로 지정되어 서울의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아파트, 다세대주택 등이 늘어나면서 도시로 개발되었다.
1997년 현대건설 아파트(현, 현대리버빌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 백제 초기의 주요 유물과 문화층이 발견되면서 풍납토성의 발굴조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2] 서울시립대학교 신희권 교수는 2017년의 저술을 통해 이때 발견된 주거지들이 도성 내 고급 관리들의 거주지라고 설명하면서, 이것들은 “사회 계층의 분화를 입증하는 동시에 상당히 체계화된 도성의 구조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주장하였다.[3] 그러나 발굴조사 과정에서 문화재를 보존하고 복원하려는 입장과 주민의 재산권과 생활권을 보호하려는 입장들이 갈등을 빚어왔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던 이른 사례가 2000년 5월 13일 경당연립 재건축 현장이다. 당시의 재건축조합원이 발굴현장 일부를 훼손하여 사회적인 관심을 받게 된 사건이 있었다.[4] 2000년 5월 16일 국무회의에서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으로부터 이 사건을 보고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풍납토성이 백제위례성이라면 비용과 관계없이 보존하라고 지시하면서 토성 내부 보존이 결정되었다.[5] 1993년부터 2022년까지 총 1조 1,016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보상토지들을 매입하였으며, 현재 총 76%가 매입이 완료된 상황이다.[6]
발굴 초기에는 풍납토성이 백제의 위례성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이후 고고학, 역사학 등 여러 학문분야에서 한성백제의 역사에 대해 지속적인 연구가 진행되면서 풍납동 토성이 한성백제기의 첫 도읍인 하남 위례성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최근의 여러 연구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희권 교수는 풍납토성 내부의 대형 거주지와 판축기법으로 거대하게 지어진 성벽 발굴을 통해 “2천 년 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백제의 첫 도읍지, 즉 ‘하남 위례성’이란 사실이 입증된 셈”이라고 주장했다.[7] 또한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의 전세원 학예연구사 역시 2023년 발표된 저술에서 1997년 이후 25년간 풍납토성에 대한 조사는 여러 분야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그러한 조사와 연구성과에 의해서 “풍납토성이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백제의 위례성임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었다고 설명하였다.[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서울 풍납동 토성을 “서울특별시 송파구에 있는 한성 백제시대 첫 도읍지인 하남 위례성으로 인정되는 유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9]
이렇게 풍납토성이 한성백제의 왕성으로 인정되면서 서울의 역사는 조선의 한양을 중심으로 하는 ‘정도 600년’이 아니라 한성백제의 역사를 포함하는 ‘2000년 역사도시’로 확장될 수 있었다. 이는 서울시가 2016년 1월, 2000년 역사를 가진 서울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역사도시 서울 기본계획』을 수립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이 계획은 경제발전을 위해 체계화되지 않았던 “문화유산의 현황 분석과 보존‧관리‧활용 정책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10] 또한 이 시기 서울시 역사문화재과 내에 한성백제팀을 신설하였다는 점에서 풍납동 일대의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하는 한성백제의 역사의 보존 및 활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11] 이어 2023년 4월, 서울시는 5년간 1조 2840억을 투자하는 『2기 역사도시 서울 기본계획(2023-2027)』을 발표하였다. 이 계획은 ‘과거-현재-미래가 어우러져 매력이 넘치는 역사도시 서울’을 목표로 하는데, 총 45개의 과제 중 풍납동에 대해서는 “백제 왕성인 풍납동 토성 복원을 위해 왕궁 추정지 등 핵심 권역을 집중 보상하며, 지역 주민과 상생을 위해 정주환경 개선을 지원”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이라고 밝혔다.[12] 역사적, 학술적, 문화적 가치뿐만 아니라 관광자원으로서 경제적 가치까지 기대되는 풍납토성을 적극적으로 보존하고 관리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주민과의 상생을 강조하는 정책이 연이어 발표되는 것은 한편으로는 풍납토성 일대의 유물과 유구들이 대부분 현재 지역 주민들이 살고 있는 주택과 토지 밑에 매장되어 있기 때문에 그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점차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해볼 필요가 있다.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알고, 지역주민과의 상생을 강조하는 이러한 태도는 서울시뿐만 아니라 문화재청의 계획에서도 발견된다. 2022년 3월 문화재청이 발표한 『2022년도 성과관리 시행계획』에서는 “공존과 발전”을 위해서 주민의 참여와 합의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에는 “경제적 개발 과정에서 문화재의 훼손과 멸실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했으나, 이제는 “경제적 양극화, 지방소멸 우려, 인구절벽 및 공동체 해제 등” 사회적 문제를 함께 고려하는 요구들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13] 풍납동과 관련하여서는 2002년, 2009년, 2015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 기본계획이 발표되었는데, 그 기조가 기존 문화재 보존을 위한 건축행위 제한 등이 주를 이루던 방향에서 “문화재와 주민이 상생하는 종합정비계획”으로 기본계획의 방향이 변경되었다.[14] 또한 문화재로 인해 낙후된 지역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2020년 「풍납토성 보존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2021년 6월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2023년 문화재청은 『풍납토성 보존・관리 종합계획(2023-2027)』을 수립하여 5개년 관리 방향을 통해 주민과의 갈등을 완화하고 문화유산을 보존하면서도 주민과 상생하는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인 움직임은 조화와 상생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 단계라고 볼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입장과 그에 따른 정책이 체계적이고 장기적으로 일관성을 유지한다면 분명히 어느 시점에는 지역발전에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도 주민과의 갈등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풍납토성주민대책위원회는 2022년 12월 20일, 주민 3000여명의 서명을 받아 규제 해제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주민이 문화재로 인해 피해받는 것이 아닌, 문화재와 주민이 공존할 수 있도록 문화재청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15] 또한 2022년 12월 23일 서울 이스트센트럴타워에서 개최된 「풍납토성 보존・관리 종합계획 수립 공청회」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주민들은 여전히 규제에 강경한 태도로 반발하고 있다.[16] 최근 들어 이와 관련된 갈등은 더욱 첨예해진 양상을 보인다. 송파구는 2023년 3월 16일 문화재청을 상대로 헌법재판소에 과도한 규제로 인한 “권한 침해 확인과 풍납토성 보존·관리 종합계획을 취소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17] 또한 서울특별시의회 김규남 의원이 대표 발의한 「풍납토성 보존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안 조속 처리 및 풍납동 건축규제 완화 촉구 건의안」이 5월 3일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는데, 이 건의안은 국가 차원에서 풍납동 규제를 완화하고 실질적인 이주대책을 마련할 것을 건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18] 그리고 2023년 7월 송파구는 ‘풍납동 미래도시 연구용역’을 통해 개발과 보존의 상생안, 즉 왕궁으로 추정되는 보존구역은 현장보존하면서 그 주변의 관리구역은 주민의 재산권을 회복하는 개발을 추진하는 풍납동 미래도시 구상안을 제시하기도 하였다.[19]
이렇듯 모두가 공존과 상생을 외치고 있지만 각자의 지향점이 너무나도 다르다. 여러 가지 상황들과 각자의 입장들을 고려할 때, 풍납동을 둘러싼 문제는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어 쉽게 합의점을 도출하기 어렵다. 문제의 해결방안을 찾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실제로 적용되어 변화를 체감하기까지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문화재 보상 대상의 범위가 넓고 발굴조사가 장기화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집과 동네가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에 떨고 있는 주민들에게 관이 제시하는 상생이라는 것이 와닿지 않는 것은 아닐까.
방관하지 않고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흘러가는 시간과 방치되는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지금, 여기’의 가치를 생각하게 할 방법은 없을까. 모두가 외치는 상생과 공존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풍납동에서 예술은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풍납 애뉴얼 아트 프로젝트(Pungnap Annual Art Project)는 이러한 수많은 질문에 대한 작은 반응에서부터 출발하게 되었다.
3. 풍납 애뉴얼 아트 프로젝트의 시작, 《매핑풍납2022》 [20]
《매핑풍납2022(Mapping Pungnap 2022)》는 현재 풍납동을 둘러싼 쟁점을 재조명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풍납동은 국가 지정문화재 사적 제11호 ‘서울 풍납동 토성’이 소재한 곳으로, 토성의 내부가 이미 마을을 이루고 있어 문화재 보존과 주민생활권 보장 사이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지역이다. 1997년 현대건설 아파트 재건축현장에서 백제 초기의 중요한 유물이 발견되면서 풍납동 일대 발굴조사가 본격화되었고, 이후 풍납토성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 복원사업이 대규모로 추진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보상 절차를 통해 매입된 토지 위의 건물들이 철거되어 지역 내 보상매입지들이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이러한 부지 중 일부는 거주자 우선 주차장으로 활용되거나 소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정원처럼 꾸며졌지만, 많은 경우 풍납동 토성이나 발굴된 백제 유물을 연상시키는 상징물이 그려진 소위 “문화재 펜스”를 세우고 주민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공터로 방치되어 있다. 풍납동에서 일상을 살아가며 마주하게 되는 중장비와 철거 현장은, 탁 트인 하늘과 잘 가꾸어진 풍납토성 산책로와 모순적으로 병치된다.
이 프로젝트는 문화재 이슈로 둘러싸인 풍납동의 현재에 주목하면서도 사라지는 공간, 사라진 공간, 사라질 공간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은 2000년 전 과거를 되살리는 데 초점이 맞춰진 문화재 보존 및 복원 정책을 추진하려는 입장과 주민들의 생존권과 재산권을 보호하고 개발이나 토지매매를 통한 미래의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는 태도들이 충돌하며 발생하는 갈등 상황보다는 일상에서의 ‘풍납의 현재’에 주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한 기획이다.
《매핑풍납2022》는 풍납동의 현재 모습을 주민들과 함께 작품을 통해 기록하는 《풍납을 잇다(Connecting Pungnap)》와 풍납동 문화재 매입지의 현재의 상황을 조사・연구하고, 지역 내 유휴공간을 활용할 것을 제안하는 《□을 지켜보는 이들을 위한 제안서(How to Enter the □)》, 두 개의 프로젝트로 구성되었다.
(1) 《풍납을 잇다》 (2022. 10. 26 – 11. 2) 먼저 《매핑풍납2022》의 두 전시 중 하나인 《풍납을 잇다(Connecting Pungnap)》은 주민을 모집하여 예술가들과 함께 현재 풍납동의 모습을 예술 작품으로 기록하여 전시한 프로젝트이다. 내일이면 사라질지도 모르는 공간, 나에게 특별한 추억이 있는 장소, 혹은 어제 사라져버린 건물의 터를 작가와 주민이 직접 그려보는 것이었다. 2022년 8월, 풍납동 주민이나 생활권자들을 참여자로 모집하였고, 총 여섯 명의 참여자가 모이게 되었다. 이 전시에 참여하는 백연수, 한연선, 최지영 작가는 모두 풍납동에서 전시를 개최한 경험이 있었다.[21] 참여자들은 각각 두 명씩 먹 드로잉, 목판 드로잉, 펜 드로잉으로 나뉘어 한 달 이상의 기간 동안 4회에 걸친 워크샵을 통해 작품 제작 단계부터 설치에 이르는 전 과정을 작가와 함께 하였다.[22]
동양화를 전공한 한연선 작가와 함께 작업한 먹 드로잉 팀의 박현주, 안소연 참여자는 풍납동에서의 기억과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작품에 담았다. 자주 놀러가던 아들 친구의 집이 철거된 터를 그린 안소연의 <자리의 기억>(2022) 연작은 이렇게 주민의 삶의 터전이 철거되고 있는 풍납동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많은 추억들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없어져서 마음 아팠던 걸 작품으로 표현해보고 싶다”라고 이야기하였다.[23] 그러면서도 그곳에서 추억을 쌓았던 아이들의 이름과 희망적인 문구들을 작품에 써 넣고 담담한 필체로 풍납동을 묘사하였다. 박현주는 “주변에 하나씩 사라지고 그곳에 사시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떠나고 며칠 만에 가보면 집이 없어지고 하는 것을 작업으로 표현”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며, <빈집>(2022)을 통해 풍납토성의 테두리 안에 풍납동 하면 떠오르는 개인적인 경험 속의 상징물들을 배치하였다.[24] 그가 유쾌하게 표현한 풍납동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한연선은 참여자들이 촬영한 사진과 풍납동에서 자주 목격되는 펜스를 소재로 <단정한 잔해>(2022)와 <펜스 너머>(2022)를 제작하였다. 무채색의 먹이 보여주는 다소곳한 이미지가 일견 정적으로 보이는 듯하다가도, 잔잔한 펄이 자아내는 반짝이는 생동감이 참여자들의 작품에 나타난 밝은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먹 드로잉 섹션의 전시장 벽면은 다층적인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
목판 드로잉 팀의 남주희, 정혜윤 참여자는 나무 조각 작업을 해 온 백연수 작가와 함께 <풍납 identity>(2022)라는 공동 작업을 통해 “문화재, 유적, 서성벽, 왕성” 등과 같이 풍납동에서 자주 목격되는 단어들을 목판에 새기고 이를 종이와 천에 찍어내는 타이포 기반의 작품을 제작했다. “풍납동에서만 볼 수 있는 타이포가 많다”라고 설명한 남주희의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한 이 공동 작업은, 목판화라는 매체 자체가 가진 거칠고 투박한 질감이 발굴조사와 철거공사를 멈추지 않는 풍납동의 특수한 상황과 겹쳐지면서 그 특유의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시킨다.[25] 정혜윤은 <거목>(2022)에 대해, “동네 탐방에서 굉장히 오래된 고목이 인상적이어서 그것을 표현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그렸다”고 이야기하며 오래된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전해주었다.[26] 백연수는 <mapping 풍납>(2022)을 통해 첫 워크샵에서 팀원들과 동네를 함께 탐방했던 발자취를 풍납동 지도 위에 선과 점으로 오버랩 시킴으로써 풍납동에 대한 인상을 경험적으로 담았다. 이 목판 드로잉 작품은 평면적인 풍납동의 지도 주변에 하늘과 물이 흘러가는 형상을 새겨 넣어 채색한 것으로, 풍납동 토성의 내부에만 주목하는 좁은 시선을 보다 입체적으로 확장시킨다.
펜 드로잉 팀의 공유선, 김현순 참여자는 최지영 작가와 함께 펜과 수채화 물감으로 작업하였다. “풍납동에서 직장을 다닌 지 15년이 되었다”는 김현순은 이곳을 자신이 사는 곳처럼 자주 드나들었다고 이야기하면서, <현대 봄>, <현대 여름>, <현대 가을>(2022) 연작을 통해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풍납의 모습을 그렸다.[27] 공유선의 <282-1 in>과 <282-1 out>(2022)은 영어체험 마을로 활용되던 붉은 벽돌 건물을 그린 작품이다. 자신의 아이들이 풍납동에 살면서 드나들던 영어체험 마을에서의 추억을 그리워하면서 그는, “지금은 닫혀 있어서 다른 용도로 활용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업했다고 설명한다.[28] 최지영은 풍납동을 기록하는 두 참여자의 손을 스케치하여 풍납동을 기록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는 외부인인 작가 자신의 시선을, <기록하는 손>(2022) 연작을 통해 보여주었다.
이 전시는 무엇보다 주민들과 함께 현재의 풍납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현재 풍납동이 직면하고 있는 이슈들에 대해서 토론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였으며, 주민들의 개인적인 추억과 사라지고 있는 풍납동의 현재의 모습을 작품으로 남겨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주민들은 모든 과정을 예술가들과 공유하고 그들과 함께 작업하며 그 결과물을 공동으로 전시함으로써 예술을 창작하고 발표하며 향유하는 일련의 과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2) 《□을 지켜보는 이들을 위한 제안서》 (2022. 11. 7 – 11. 14)[29]
《매핑풍납2022》 프로젝트의 두 번째 전시 《□을 지켜보는 이들을 위한 제안서(How to Enter the □)》에는 독일 함부르크를 중심으로 사회참여적(socially engaged) 예술과 디자인을 실천하는 콜렉티브 DGRG가 참여하였다. 이들은 풍납동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김가영과 그가 유학중 함부르크에서 만난 리사 보이틀러(Liza Beutler), 닉 크레이븐(Nick Craven), 티나 헨켈(Tina Henkel), 총 4명의 예술가들로 구성된 팀으로, 사회참여적 프로젝트를 통해서 도시 속 공적공간을 공공재로 인식하고 이를 민주적이고 자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DGRG가 진행한 대표적인 프로젝트로는 함부르크에서 진행된 《제르비어포슐락(Serviervorschlag): 잊혀져가는 도시 이미지들에 대한 프로젝트》가 있다. 이 프로젝트는 철거 예정인 건물의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의미와 배경을 연구하고 지역 커뮤니티와 소통함으로써 그 공간이 가진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들은 현대 사회의 도시계획과 무분별한 개발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도시공간의 사회적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며, 그 공간들을 살아온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아카이빙한다.
도시 속 공적공간을 대하는 이러한 작가들의 태도가 이번 전시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들은 약 2주 동안 풍납동에 머물면서, 철거되었거나 철거 예정인 공간들을 조사하여 이곳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살펴보고 이를 기록하였다. 사적지로 지정된 공간의 공공성을 재고하고 퍼포먼스를 통해 이곳에서 생활하는 풍납동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이 공간들의 활용방안을 모색할 것을 제안하였다.[30] 그리고 그 리서치 과정의 기록과 결과물을 공간지은에서 전시하였다.
가로 약 2미터, 세로 1미터 크기의 짙은 고동색을 한 문화재 펜스는 풍납동이 문화재 보존구역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구조물이다. 건물이 철거되기 전에는 짙은 회색의 높은 펜스가 건물 주변을 에워싸고, 건물이 철거된 이후에는 사라진 집터에 문화재 펜스가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DGRG 작가들은 이 문화재 펜스에 주목하여 이와 동일한 사이즈의 주황색 펜스 모형을 제작하고 원본 펜스에 새겨진 수막새, 토기 등 문화재와 관련된 픽토그램을 모두 테니스 라켓, 운전대, 모종삽 등 현대사회의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치환시켰다. 이렇게 제작된 네 개의 펜스는 퍼포먼스를 위한 임시 무대가 되었다. 사적 매입지 위에 조성된 풍납백제문화공원과 동성벽공원에서 진행되었던 두 차례의 퍼포먼스에서 작가들은 비둘기 가면을 쓰고 상・하의를 주황색으로 맞춰 입고 등장한다. 펜스에 부착된 일상의 아이템들을 탈부착하면서 관객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의 모습들을 비언어적인 몸의 움직임을 통해 유머러스하게 전달하였다. 작가들은 이 퍼포먼스에 대해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공공 공간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탐험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주민과 이 공간을 지켜보는 사람들 역시 공터를 활용할 방법들을 함께 모색해주기를 제안하는 상징적인 제스쳐”라고 밝혔다.[31] 주민의 인구가 감소하고 상권이 침체되면서 전부 표면화될 수 없을 만큼 여러 입장들이 얽혀 있는 이 지역의 무게감과는 대조적으로, 퍼포먼스를 통한 이들의 제안방식은 유쾌하고 명료하다.
전시장에는 퍼포먼스에 사용되었던 강렬한 주황색 펜스가 조명 아래 설치되어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것은 지역 내에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문화재 펜스를 상기시키며 문화재와 관련된 문제를 공론화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 그 펜스 너머 코너 공간에는 풍납동 토성 둘레길을 따라 펜스를 들고 산책하는 모습을 인화한 사진이 전시되어 있으며 그 옆 코너 하단에 앞서 설명한 15분 가량의 퍼포먼스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이어지는 벽면에는 작가들이 풍납동을 산책하면서 찍은 여러 장의 사진들이 나열되어 있다. 여기에는 철거 직전 회색의 높은 펜스가 쳐진 건물, 문화재 발굴 현장, 그리고 발굴 이후 공터가 된 모습 등 그들의 시선으로 본 2022년의 풍납동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나머지 한쪽 벽에 설치된 <유적6-문화재 보호구역>(2022)은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연구 결과물이다. 지도를 통해 문화재 정보를 제공하는 문화재청의 문화재공간정보서비스의 지도데이터들을 가공하여, 지금까지 확장되어 온 풍납동 내 국가 지정문화재 구역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시각화한 것이다.
“네모”, “빈 칸”, “미음”, “뭐뭐” 등 읽는 사람마다 달라지는 제목에 쓰인 사각형은 풍납동 내 공터를 형상적으로 상징하는 동시에 그 공터를 지칭하는 통일된 명칭이 없음을 중층적으로 나타내는 기호이다. 이 프로젝트는 용도 없이 비어있는 부지들이 공적공간으로 인식되어 현재 이곳을 살아가는 주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공간으로 재조명되기를 기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가들은 “인류가 발전해 온 20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이 땅을 살았던 장소의 옛 모습을 복원시켜 전시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현 시대가 직면한 다양한 사회문제를 세심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하면서, “현재의 삶 속에서 우리가 남길 문화유산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통해 현재의 모습들이 축적되어 미래의 역사가 된다는 관점을 함축적으로 제시하면서 궁극적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생각하게 한다.[32]
《매핑풍납2022》는 풍납동의 좁은 골목에 위치한 작은 전시공간에서 짧은 기간 동안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3살의 어린아이부터 80대 어르신까지 두 전시를 포함하여 총 180여명의 관람객이 방문하였다. 또한 두 번째 전시를 위해 기획된 이틀간 진행된 퍼포먼스는 게릴라 형식으로 진행되었음에도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약 50명이 관람하였다. 주민은 물론이고 외부에서 방문한 예술계 관계자들이 풍납동 이슈와 동네 분위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풍납동을 주제로 하는 작품을 고려하게 되기도 하였다.
이 프로젝트가 계기가 되어 2023년 3월 공간지은에서는 김가은미술사무소와 공동으로 기획한 《남백희: 발견, 재발견(rediscovering discovery)》이 개최되었다.[33] 남백희는 평생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었던 풍납동 주민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 퇴직을 하고 약 2년에 걸쳐 하나의 대상을 반복적으로 그렸다. 주민이 작가가 된 이 전시는 일종의 주민작가 발굴 프로그램으로 지역 친화적인 전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매핑풍납2022》를 계기로 지역 주민과의 소통을 이어나가며 풍납동의 일상을 예술적으로 풍요롭게 하는 활동들이 이어지고 있으며, 2023년 《본딩풍납2023》이 기획되면서 풍납 애뉴얼 아트 프로젝트가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4. 그리고 《본딩풍납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