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과 난방에서 예술창고까지





김가은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과 유럽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미술가 이주요는 기존의 관념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시스템을 재구축한다. 그는 자신의 일상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섬세하게 반응하며, 드로잉,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새롭게 감지하게 한다. 
 작가는 1990년대 후반부터 값싼 일상용품으로 <가습과 난방Warming & Humidifying>과 같은 오브제를 만들고, 특유의 드로잉으로 그 사용법을 유머러스하게 소개하는 일련의 출판물을 발표했다. 작업에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가 두드러졌던 20대의 이주요에게 전시공간은 매우 낯설고 공적인 공간이었고, 출판은 그의 초기 작업이 관객을 만나는 비교적 사적인 전시 플랫폼이었다. 그가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 보여준 ‘박이소 오마주’ <북두팔성 플랜 Eight Stars in Big Dipper Plan>(2005)을 비롯하여 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친 이주요의 작업에는 현대사회의 가치 기준으로 이해하기 힘든 삶을 선택한 특별한 타자들이 등장한다.
  자신의 생활공간이자 작업실을 제한된 관객들에게 공개한 《나이트 스튜디오Night Studio》는 또 다른 변화의 분기점이 된다. ‘박이소 오마주’를 계기로 물질과 조각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이주요는 이태원 작업실에서 <타이프라이터 Typewriter>와 <무빙 플로어 Moving Floor>와 같은 구축적인 설치작업을 시도하였다. 2008년부터 약 3년 동안 그는 이곳에서 과거의 활동을 되돌아보고, 제도권 전시를 배제한 미술활동에 대해 치열하게 재고했다. 2013년, 이태원 스튜디오를 네덜란드와 독일의 미술관에 옮기고 현장의 조건과 긴밀하게 관계 맺도록 설치한 개인전 《월즈 투 톡 투 Walls to talk to》에서 이주요의 사적이고 비정형적인 만들기 방식과 비주류적이고 수행적인 작가적 태도는 유서 깊은 서구 미술관의 전시 관행에 균열을 냈다는 다수의 평가를 얻게 된다.
 2015년 최초의 협업 프로젝트 《도운 브레익스Dawn Breaks》를 시작하며, 이주요는 스스로 “다시 길에 나갔다”라고 말했다. 그는 작가 정지현과 함께 만든 ‘스토리텔링 장치들’에 작가들과 이웃들의 오브제와 이야기를 실어 나르는 퍼포먼스를 통해 많은 이들을 만나고 함께 일했다. 2019년 《올해의 작가상》에서 이주요는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장 한 가운데 비용문제로 둘 곳 없는 동료의 작품을 보관하는 예술창고 시스템 《러브 유어 디포 Love Your Depot》를 보여주었다. 그의 협업 방식은 공동체를 위한 생산적인 대안으로 심화되어 2021년 《러브 유어 디포_강남 파빌리온》이라는 공공 프로젝트를 통해 일반 시민의 일상공간에 자리 잡으며 다시 미술관 밖으로 나왔다.



* 이 글은 『올해의 작가상 10년의 기록』(국립현대미술관, 2023)에 수록된 글이다. (p.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