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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적 관찰자의 시선이 머무는 손
The Reflective Observer's Gaze on Hands
김가은
신하정은 일상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그 과정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주제와 감정을 포착하여 회화로 작업한다. 그가 오랜 시간에 걸쳐 탐구해 온 주제 중 하나는 ‘손’이다. 아기는 태어난 후 자신만의 감각 세계를 확장해 나가기 위해 주저하지 않고 손 전체를 사용하여 적극적으로 사물을 만지면서 온도, 질감, 경도 등을 탐지한다. 여기에서 신하정은 손이 일종의 “원초적인 감각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촉각을 담당하는 가장 기본적인 감각기관은 피부이며, 손은 그중에서도 촉각수용체가 집중되어 있어 감각적으로도 예민한 부위 중 하나이다. 문화적 차이는 있겠지만, 악수는 반가움이나 협력의 표시이고, 손 인사는 친밀감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손은 인간의 내면과 외부 세계를 이어주는 감각 매개체이자, 강력한 비언어적 소통 수단이다. 나아가 손은 단순히 도구적인 기능을 넘어 삶의 흔적과 세월의 흐름을 함축적이고 즉각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종종 예술과 문학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그려지곤 한다. 신하정은 손을 기능적인 도구나 상징적인 의미 이상의 감정적, 표현적 소통 기관으로 바라본다. 그는 손이 고유한 문법이나 규칙으로 제한되는 언어와는 달리, 자유롭고 직관적으로 내면을 표현할 수 있는 감정 전달 수단으로 인식한다.
<꼭꼭 숨어라 나는 여기 없다>는 한 아이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다. 유화와 오일파스텔을 함께 사용하고 화면 일부를 레진으로 마감해 광택을 더했다. 이 작품은 아이가 까궁 놀이를 하며 얼굴을 숨기는 순간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찡그린 얼굴을 손으로 가려 감정을 감추는 모습으로 읽히기도 한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이 행위는 마치 자신이 사라진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키거나, 내면의 감정을 숨길 수 있다는 믿음을 반영하기도 한다. 게다가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이 세상 전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순수한 상상력을 환기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작가가 만난 여러 인물들을 묘사하여 시리즈로 제작되었는데, 같은 구도 속에서 각 인물의 특징과 손의 표현이 미묘하게 변주되면서 손 아래에 숨겨진 각자의 내면 이야기를 여러 갈래로 상상하도록 유도한다.
<말문>은 마치 굳게 닫힌 철문처럼 두 손이 내부와 외부 세계를 철저하게 분리하는 구도를 보인다. ‘말문이 트인다’, ‘말문이 막힌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말문은 말로 소통을 시작하는 행위를 연상시킨다. 이 작품 속 내부와 외부 세계는 목소리나 눈물, 혹은 단순한 숫자 등 다양한 표현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외부에 떠다니는 이야기와 내면에 숨겨둔 이야기를 어떻게 분리하고 각각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그 둘의 차이는 어디에 있으며 그 사이를 어떻게 넘나들 수 있을까.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비언어적 소통방식에 대한 여러 질문을 던진다.
<노오란 손>은 따뜻한 두 손이 조심스럽게 소중한 무언가를 끌어안고 있는 장면을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손은 미세한 떨림과 특정 움직임으로 불안, 긴장, 분노, 사랑, 안도 등을 드러내며 섬세한 감정을 표상한다. 박수를 치거나 주먹을 불끈 쥐는 행위에도 행위자의 마음 상태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아이가 어머니의 손을 잡으면 안정감을 느끼고 등을 어루만지는 동작으로 위로와 보살핌을 받는 것처럼, 말없이 손을 지긋이 잡아주는 행위만으로도 온기와 사랑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손의 움직임을 사용하여 얼마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을까.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실현하는 수단으로서의 손은 강력한 창작과 실천의 도구이기도 하다. 악기를 연구하고, 그림을 그리며, 연필로 글씨를 쓰거나 컴퓨터를 조작하는 행위까지, 손은 인간의 창작과 표현 욕구를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기관 중에 하나인 것이다. 신하정은 주로 유화를 사용하지만 재료나 도구에 얽매이지 않고 단순한 구성이나 색감으로 직관적이고 간결한 순간의 심상을 표현한다. 이는 그가 이미지가 가진 본질이나 개념 그 자체를 표현하고자 의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직접 유화 물감을 만지고 손바닥을 사용하여 그린 <Breeze>는 이러한 그의 태도를 잘 보여주며, 살랑살랑 퍼져나가는 바람을 손으로 느끼는 듯한 따스한 움직임으로 다가온다. 이번 개인전 《말하는 손》은 섬세한 관찰자가 본 내면과 외부 세계를 연결하는, 여러 의미를 가진, 각자의, 손이 말하는 지점까지의 여정을 함께한다.
* 2024년 11월 19일 작성.
** 이 글은 2024년 11월 23일부터 12월 04일까지 공간지은에서 개최된 신하정 개인전 《말하는 손》전의 서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