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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적 소유에서 능동적 창작으로
From Passive Possession to Active Creation
김가은
누구에게나 시야에 희미하게 스치듯 존재하는 물건들이 있다. 에너지가 소진되어 처음부터 쓸모가 없었던 듯 무기력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이다. 때때로 눈길을 주기도 하지만 섣불리 다가가기는 어렵다. 누구의 것인지 모호하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 가족의 물건들이 어느 집에나 있다.
축적된 서사와 복잡한 감정을 떠안은 채 일종의 유물이 되어 버린 이러한 사물들은 낡은 것을 폐기하고 새롭고 효율적인 상품을 소비하게 만드는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마음 한 구석을 불편하게 점유한다. 그러나 가족의 물건을 버리는 것은 심적으로 부담이 되고, 소유자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개인의 판단만으로 폐기를 결정하기 어려워진다. 우리는 이러한 사물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사물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의미와 가치가 새롭게 재구성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인류학자 아르준 아파두라이(Arjun Appadurai)는 『사물의 사회적 생애(The Social Life of Things)』에서 사물을 사회적 행위 속에서 움직이는 존재(things-in-motion)로 바라본다. 비록 그의 논의가 경제적 가치를 지닌 상품에 맞춰져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를 둘러싼 사물의 의미와 가치를 고정된 상태가 아닌 사회적 맥락 속에서 변화하는 것으로 다시 바라보게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족의 물건을 버려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통해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부여할 수 있는 사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워크숍 <광명시의 수집가들(가족의 물건)>은 이러한 전환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이 워크숍은 사물이 지닌 의미를 탈맥락화하고 그 사물들을 조형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버려야 하는데 버리지 못하는 사물의 양가적 굴레를 풀어내는 과정이다. 참여자들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가족의 물건에 얽힌 기억, 서사, 감정 등을 함께 이야기하고, 사물이 지닌 조형성에 주목하거나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 낸다. 사물의 이미지를 해체시키고 재조합함으로써 가족의 물건은 창작의 재료가 된다. 해체를 통해 사물의 본래의 의미를 분리시키고, 재조합이라는 조형적 행위를 수행함으로써 사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재맥락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과거에만 머물러 있던 물건이 현재로 소환되어 새로운 생명력을 획득함으로써 사물에 대한 심적 불편함을 해소하는 계기가 된다. 이 과정에서 수동적 소유는 능동적 창작으로 전환된다. 사물이 지닌 의미와 가치가 새로운 맥락으로 옮겨지면서 비로소 개인은 해당 사물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지역 참여자들이 교류를 통해 창작자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예술을 통해 일상 속 문제들을 해소하고자 시도하는 이러한 활동은 지역 기반 예술 프로젝트의 의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는 개인의 영역이 공동체로 확장되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예술이 지역 사회와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아가 이러한 활동은 사회 문제를 다루는 새로운 미학적 태도를 제안하는 것이기도 하다.
《광물채집》은 버릴 수 없었던 가족의 물건이 창작 활동을 통해 예술작품으로 전환되어 개인과 지역 공동체를 연결시키고 관객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물의 또 하나의 생애 과정을 보여준다.
* 2025년 9월 3일 작성.
** 이 글은 2025년 9월 6일부터 9월 21일까지 예술공간 광명시작에서 개최된 모든예술31 <광명_곳곳> 선정작 《광물채집》 전의 서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