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의 시선: 이타미 준을 새롭게 감각하다
Five Perspectives: Rediscovering Itami Jun


김가은



  1. 협업의 시작

 ‘재일 한국인, 아날로그, 풍토와 역사를 강조한 건축가 겸 예술가’라는 수식만으로 이타미 준(伊丹 潤, 1937-2011, 본명 ‘유동룡’)의 세계를 온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이타미준건축문화재단의 설명에 공감하며,[1] 2025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이타미 준의 세계를 재해석하고 확장하기 위해 이타미준건축문화재단과의 협업이 진행되었다. 리더예술인 김가은, 참여예술인 송지인, 신재은, 전민혁, 조인한, 총 다섯 명의 예술인이 참여한 이 협업은 기획, 조각, 설치, 사진, 영상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예술인이 건축가이자 예술가인 이타미 준이 구축한 세계를 동시대 예술가 각자의 감각으로 다시 탐색해보는 시도였다.[2]
  예술인들은 이타미 준의 건축이 펼쳐 놓은 공간을 현재의 감각으로 더듬어보면서 그 안에 잠재된 의미를 포착하는 것에 집중하였다. 작업의 방식은 선행적으로 정해둔 목표를 향하기보다는, 먹이 종이에 스며드는 것처럼 하나의 중심에서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며 의외의 형상을 발견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이를테면 “이타미 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없을까.”, “예술인 각자의 시각에서 이타미 준은 어떻게 비춰질까.”, “이타미 준이라면 이 장면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등 여러 질문을 가지고 각자의 방식대로 이타미 준을 리서치하여 자신의 작업과의 연결을 시도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진행된 개별 작업들은 독립적이면서도 유연한 연결을 통해서 또 하나의 맥락을 만들어낸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하나의 고정된 의미로의 환원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이타미 준에 대한 해석의 확장과 다층화를 의미하는 동시에, 기존의 해석에서 벗어나 건축 너머에 있는 감각을 사유해보자는 제안의 태도를 보여준다. 이 글은 그 제안을 시작하는 단계로, 예술인 각자 진행한 리서치의 과정을 설명한다. 


2. 이타미 준의 ‘무(無)’

  예술인의 개별 리서치 작업을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이타미 준의 철학 전체를 아우르는 이해가 선행되어야 했다. 자연과의 조화, 토착성, 야성미, 지역성, 온기, 소재의 미학 등 여러 가지 키워드들을 분석해보았지만 그의 철학의 일부를 설명할 뿐 변화를 거듭해온 그의 세계가 가진 본질에 닿지 못한 채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개별 활동으로 <각인의 탑>(1988)과 관련된 글을 번역하며 리서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무(無)”라는 키워드를 발견했다. 이타미 준은 인터뷰와 글에서 반복적으로 ‘무’의 개념을 언급한다. 반복해서 읽어보면서 그가 말하는 무 개념에 대한 리서치를 시작했다.


“흙이나 돌이나 나무, 그 소재가 어떠하든지 간에 예술작품은 현실의 모든 것을 연상시키면서도 그것들을 한없이 ‘무(無)’로 만드는 어떠한 것이다. 또한 '무'에 한없이 가까이 다가가면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실재(実在)인 듯한 그것은 우리를 아름다움(美)으로 전율하게 만든다.” [3]

  
이 글은 1990년 잡지 『신건축』에 이타미 준이 새롭게 건설되고 있는 다카마쓰(高松) 공항 내 설치된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 1904-1988)의 유작 <타임 앤 스페이스(Time and Space)>를 소개하고 이를 자신의 건축물 <각인의 탑>(1988)을 병치시키면서 분석한 글의 도입 부분이다. 이 글에서 그가 말하는 예술작품은 흙이나 돌 등의 소재들을 한없이 ‘무’로 만드는 것인데, 여기에서 말하는 무는 ‘텅 빈’, ‘없음’과는 거리가 먼 개념으로, ‘살아 있는 실재(実在)’라는 개념을 통해서 형태나 소재를 배제한 존재 혹은 근원을 뜻하는 것으로 읽힌다. 이는 하이데거의 존재론과 연결시켜 이해해볼 수 있는 지점이 있다.


“막연한 어떤 선입견 같은 것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것을 다시 무(無)로 되돌립니다. 그러면 그 무의 뒤에 고요함(寂)이 찾아옵니다. 그때 한 획을 더하면, 이미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4]


  이 인용에서도 이타미 준은 ‘무’를 언급하는데, 이 글은 1987 년 1월 도쿄 소재 갤러리Q에서 개최된 《먹의 세계로부터(From the World of Sumi)》의 출판물에 실린 대담이다. 이 전시는 조각가 하야미 시로(速水史郎, 1927- )와 함께 참여한 전시로, 붓의 터치에 의한 형상에서 드러나는 상징성에 대한 질문에서 회화 속 이미지들이 그저 팔이 이끄는 대로 그은 스트로크일 뿐이라는 설명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여기에서 ‘다시’ 무로 돌아간다고 표현한 부분에서 “무(無)로의 회귀”라는 개념으로 해석하여, 외부의 의견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상태, 모든 것이 시작되는 지점이 되는 그 상태, 혹은 존재하는 그 자체로 이해해볼 수 있다. 2009년의 한 인터뷰에서 이타미 준은 서울에서 벽돌 2만 개를 일본까지 배로 운송하여 펍 <트렁크> 프로젝트에 사용했던 일화를 이야기하면서 “당시, 저는 어떤 소재를 가다듬어 나갈수록 무에 가까워지는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5] 이러한 맥락들을 감안해볼 때, 그에게 ‘무에 가까워지는 것’은 여러 가지 상황과 맥락 속에서 표현되면서 ‘있는 그대로’, ‘그것 자체로 살아있는 존재’를 의미하고 있다고 파악해볼 수 있다.  
  한편, 그의 철학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하이데거의 「건축하기, 거주하기, 사유하기 (Building, Dwelling, Thinking)」라는 강연과 연결지어 해석해볼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보였다.[6] 하이데거는 이 강연에서 거주, 건축, 사유의 개념을 어원에서부터 분석하면서 그것들의 근원적 관계에 주목한다. 건축하는 것은 본래 거주하는 것이고, 거주하는 것은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이타미 준이 이우환, 세키네 노부오(関根伸夫, 1942-2019)를 비롯한 모노하(もの派) 작가들과 시대를 공유하면서 적극적으로 교류하였던 지점을 고려해볼 때, 그는 모노하 작가들이 추구했던 철학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근대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郎, 1870-1945)와 하이데거의 존재론 등을 탐닉했던 이우환의 이론은 이타미 준의 철학과 공명하는 지점이 있다. 이에 대한 논증적인 분석을 위해서는 향후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할 테지만, 무 개념은 그의 철학을 이해하는 토대이자 그가 추구한 예술과 건축이 공유하는 궁극의 지향점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3. 예술인의 시선

  송지인은 조각과 공예의 경계를 넘나들며 기존에 인간의 신체를 변형하거나 재배치하는 입체 작업을 해오다가 2023년 초심으로 돌아가 기존 작업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연필 드로잉 작업을 선보였다. 《흑심(黑心)》이라는 제목의 이 전시는 작가의 실험적인 작업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는데, 이 시도가 이번 협업을 통해 이타미 준의 철학과 만나게 되었다. 처음 협업을 시작할 때 작가는 건축과 사람이 지닌 미시사에 주목하여 건축물의 시간과 그 건축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의 이야기에 주목하였으나 현실적인 제약을 마주하여 작업을 선회하게 되면서 드로잉을 통해 자신의 작업과 만나는 지점을 발견했다. 기존 작업에서 사용했던 연필 대신에 이타미 준이 주목했던 먹이라는 재료를 선택하여 작가는 여러 실험을 통해 먹이 가진 특성을 파악했다. 작가는 먹과 아교라는 재료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먹의 번짐을 통한 드로잉 작업을 실험하며 시간성과 예측불가능성을 체험하게 되는데, 이 지점은 "습할 때는 먹의 색이 짙지만, 마르면 상당히 옅어져요. 솔직히 말해서, 아침에 일어나서 마른 것을 보면 실망할 때가 있어요."라는 이타미 준의 인터뷰 내용을 연상시킨다.[7]
  송지인의 연필 드로잉에 대해서 필자가 마치 중력이 없는 우주 공간을 떠다니는 듯하다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8] 먹 드로잉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분출하는 동적 이미지들이 발견된다는 지점이 특징적이다. 불규칙적으로 스며드는 먹의 형태와 뿌려진 금분의 표현에서 운율이 느껴지는데, 이는 이타미 준 건축 공간의 어둠과 대비되는 빛의 공간과 상응하며, 감각의 층위를 확장시킨다. 

  신재은의 작업은 대게 스스로를 관찰자로 위치시키시면서 시작된다. 그것은 어떤 대상을 규정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대상을 편견 없이 바라보기 위한 절제되고 담담한 응시에 가깝다. 그의 작업은 그렇게 때문에 일반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사회적 관습이나 감정의 동요를 배제한 채 대상과 그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철저하게 구조화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반적으로는 감각되지 않던 소외되고 미세한 것들이 떠오르게 된다. 
  이번 협업에서 작가는 ‘이타미 준이라면 어땠을까를 상상하며’ 그의 건축을 마주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주에 머물면서 이타미 준이 만든 건축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통로”와 “틈”을 발견하고 작업을 진행했다. 개념적으로 접근했을 때 틈은 의도치 않게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고, 통로는 어떤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에서는 서로 다른 개념이라고 볼 수 있지만, 경계의 존재를 전제하는 중간지대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 둘은 독립하지 못한 채 중심이 아닌 주변에 머물면서 전체를 새로운 영역으로 이끈다. 
  틈 사이에서 드러나는 제주의 풍경을 응시하는 작가의 행위를 통해 틈을 개념적으로 다시 조명해볼 수 있었다. 작품을 바라보는 시야는 불규칙적으로 절단된 채 초점이 불안정하게 이동한다. 틈에서 출발한 시선이지만, 틈 자체는 소멸하고 그저 관찰하는 행위 그 자체와 저 너머의 풍경만을 남겨 놓는다. 사라진 틈을 통해 틈의 존재를 확인하는 그 과정 자체에서 새로운 감각이 환기되는 것이다. 신재은은 “이타미 준에게 틈은 ‘자연이 스스로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여지’를 여는 회전문과 같은 장치”라고 설명하면서 자신의 작업 <GAIA> 연작의 감정 서사를 틈의 개념으로 재해석했다.[9] 작가가 틈을 ‘전면 개방’의 상대적 의미로서 일부를 ‘선택적 개방’하는 허락의 의도가 담긴 개념으로 접근하는 지점에서 이타미 준 건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이 펼쳐지고 있다.

  사진과 영상으로 작업하는 전민혁 작가는 건축물의 시간성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했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사진과 영상이라는 매체가 가진 차이가 크지 않다고 이야기하면서, 그 두 매체의 차이를 굳이 생각해보자면 긴 시간을 다루고 싶을 때는 사진을 선택하고 반대로 어떤 짧은 순간을 다루고 싶을 때 영상을 선택한다고 설명했다.[10] 한 장의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통제하지 못하는 여러 변수들을 감안하고 장시간 대기해야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데, 그 긴 시간을 대기한 후 촬영한 한 장의 사진은 긴 시간을 담게 된다. 그러한 맥락에서 작가의 <박명> 시리즈는 경계의 시간을 담는다. 그 경계는 짧은 찰나가 아니라 끝없이 분해할 때 무한대에 가까워지는 감각인 것이다.
  이타미 준은 저술에서 “정적 속에서, 불빛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한얀 벽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라고 썼다.[11] 전민혁은 이타미 준이 새벽에 흰 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는 일화에 주목하여 벽이 지닌 시간성을 다루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는 흰 벽은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간의 특성에 따라 시간에 따라 변화무쌍한 특징이 있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타임랩스 기법으로 하나의 이미지로 보이는 영상을 만들어보거나, 장노출 촬영을 통해 흰 벽이 가진 시간성을 담아보고자 시도했다. 최종적으로 작가는 흰 벽에서 확장하여 여러 건물의 외벽의 모습을 포착하게 되었다. 그는 건축물의 최초의 설계에서 많이 벗어난, 외벽의 부조화한 소재에서 나타나는 다층적인 비선형적 시간성에 주목하여 건축물의 외벽을 사진으로 촬영했다. 처음에 지었던 집이 시간이 흐르고 여러 사람이 보수하면서 거주한 결과가 외벽의 부조화한 시각적 이미지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외벽의 균열, 재료의 차이, 노후화로 인한 색의 변화 등은 단순한 부조화라기보다는 복수의 시간이 중첩되며 만들어진 지층과도 같은 모습을 상징한다.

  조인한은 영상을 통해 기록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면서 공간과 시간, 사물과 인간 사이의 감각적 관계를 표현해왔다. 이번 협업에서 그는 이타미 준의 건축모형에 관심을 가지고 조명장치를 이용해서 빛을 투과시킴으로써 모형이 가진 잠재성에 주목했다. 실제 건축을 시공하기 전에 제작되는 건축모형은 건축물과 매우 유사한 조형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작가가 “건축모형을 단순한 축소 재현의 장치로 다루지 않는다.”고 설명한 부분에서도 알 수 있듯이,[12] 모형은 건축물이 완성되기 전의 가변성을 지닌다. 작가는 온전하게 경험할 수 있는 건축물과는 차이를 보이는 이러한 건축모형을 이타미 준의 건축적 사고가 압축된 것으로 보았다.
  이번 협업에서 작가는 아날로그 필름을 선택하여 작업을 진행하였는데, 이는 단순한 촬영 방식의 선택을 넘어 작업 태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촬영 기법을 모두 사용하는 그가 이번 작업에서 아날로그를 선택한 것은 감각적 우연성과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포용하는 그의 작업 태도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작가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아날로그 필름을 사용할 때는 예측하지 못하는 변수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하게 되는데, 그러한 요인들을 작업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와 과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설명했다. 이러한 태도는 명백하게 손의 드로잉과 온기를 중시했던 이타미 준의 태도와도 상통하는 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촬영은 유동룡미술관 휴관일에 진행되었다. 그는 하루 동안 조명을 통해 빛의 움직임을 주면서 이타미 준의 건축모형을 바라보았다. 촬영을 진행한 이후에 새롭게 발견된 지점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그는 건축모형이 가진 폐쇄성과 단절감을 발견했다고 답했다. 조명을 옮기면서 모형을 자세하게 관찰해보려고 해도 그것을 직접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내부가 보이지 않는 차원을 넘어 정서적으로 닫혀있는 차원으로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인 동시에 그 너머의 것을 차단하는 벽과도 같은 감각이라고 해석된다. 이는 건축물이 지닌 경험적인 요소들이 모두 제거된 건축모형을 통해서 비로소 드러나는 특징으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러한 작가의 작업은 본래의 건축물이 지닌 건축적 경험을 재고하는 계기를 마련할 뿐만 아니라 건축이 지닌 조형성 그 자체에 대한 감각을 재구성한다.


3. ‘무(無)’로의 회귀, 또 다른 시작

  다섯 명의 예술인이 참여한 이번 협업은 이타미 준이라는 건축가의 철학을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인 각자가 그것을 자신의 작업세계와 교차시키면서 발견되는 감각에 몰두해본 경험이었다. 이는 이타미 준의 작업세계를 해석의 차원에서 지평을 확장하는 것인 동시에 예술인의 작업세계와의 접점을 탐구하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차용이나 모방을 통한 오마주 작업과는 구별된다.
  먹의 번짐, 틈, 시간성, 건축모형 등은 모두 이타미 준을 다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창구이다. 일견 개별적으로 감각되는 이 개념들은 모두 “예술작품은 현실의 모든 것을 연상시키면서도 그것들을 한없이 ‘무(無)’로 만드는 어떠한 것”이라고 설명한 이타미 준의 태도와 만나는 지점이 있다.[14] 예술인들의 이번 협업을, 이타미 준의 키워드를 자신의 작업 안에 수용하면서 끝없이 각자의 ‘무’의 지점으로 돌아가려는 태도로 이해해볼 수 있지 않을까. 앞서 살펴보았듯이, 그가 말하는 무는 비어있음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존재 자체이자 모든 것의 시작으로서의 감각이기 때문이다. 이타미 준이 기능적이거나 당시의 건축의 흐름에 부합하는 건축만을 고집하지 않고 자신의 감성을 바탕으로 특유의 건축 세계를 확립하며 예술가로서 활동을 지속해온 것 역시 이러한 태도와 맞닿아 있다. 
  이번 협업은 하나의 완결된 작업물을 도출하거나 닫힌 서사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이타미 준의 철학을 재해석하는 시도였다. 그것은 다섯 명의 예술인의 시선으로 이타미 준을 다시 읽어보는 시작이면서 새로운 감각을 통해서 ‘여전히 살아 있는 실재(実在)’로서의 존재를 모색해나가는 여정이었다. 




[1] 이타미준건축문화재단 홈페이지 http://itamijun.com/about (최종접속일 2025년 10월 31일).
[2] 예술인의 활동 시기는 다음과 같다. 김가은(2025년 5월-10월, 6개월), 송지인, 신재은, 전민혁, 조인한(2025년 6월-10월, 5개월). 
[3] 伊丹潤、「刻印の建築ー彫刻のような建築とイザム・ノグチ」、『新建築』、1990.1、p. 298.  
[4] 1987년 1월 10일-24일 도쿄 갤러리Q에서 열린 조각가 하야미 시로(速水史郎), 이타미 준의 2인전 《먹의 세계로부터(From the World of Sumi)》의 카탈로그에 실린 코디네이터 다카이시 유미(高石由美)와의 대담.
[5] 伊丹潤 X 古谷誠章、「[対談]時代を導く人 2:建築は大地から生まれるものだ」、『INAX REPORT』、No.180、p.28. https://www.biz-lixil.com/column/pic-archive/inaxreport/IR180/IR180_p22-38_p40-41.pdf(최종접속일: 2025년 10월 31일).
[6] Martin Heidegger, “Building Dwelling Thinking”, Poetry, Language, Thought, translated by Albert Hofstadter, Harper Colonphon Books, New York, 1971. https://www.contentarchive.wwf.gr/images/pdfs/pe/katoikein/Filosofia_Building%20Dwelling%20Thinking.pdf (최종접속일 2025년 10월 31일).
[7]1987년 1월 10일-24일 도쿄 갤러리Q에서 열린 조각가 하야미 시로(速水史郎), 이타미 준의 2인전 《먹의 세계로부터(From the World of Sumi)》의 카탈로그에 실린 코디네이터 다카이시 유미(高石由美)와의 대담.
[8] 김가은, 「과정으로서의 추상」, 송지인 개인전 《흑심(黑心)》(2023.4.19.-5.9, 공간지은) 서문, 2023. https://kkimsamuso.com/black-heart (최종접속일: 2025년 10월 31일).
[9] 신재은, 「통로, 틈, 깊이를 중심으로 이타미준과 나의 작업을 겹쳐 읽기」, 2025. https://drive.google.com/file/d/1H7OxLxikrqWYgoEzl7LPzuWZpzLoD3Kh/view?usp=drive_link (최종접속일: 2025년 10월 31일).
[10] 2025년 10월 23일 필자와의 인터뷰. 이후 전민혁 작가의 설명은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11] 이타미 준, 『손의 흔적』, 미세움, 2014, p. 19.
[12] 조인한 작업노트, 2025.
[13] 2025년 10월 23일 필자와의 인터뷰. 이후 조인한 작가의 설명은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14] 伊丹潤、「刻印の建築ー彫刻のような建築とイザム・ノグチ」、『新建築』、1990.1、p. 298.  



  • *  2025년 10월 31일 작성, 2026년 4월 11일 최종 수정
  • ** 이 글은 2025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인 파견지원 예술로 협업사업 활동에 참여한 김가은, 송지인, 신재은, 전민혁, 조인한 다섯 예술인의 협업활동을 기록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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